재일교포에게 김치는 곧 삶이었다

/김치 블로그/김치 스토리   -  2008. 1. 8. 10:01


오늘은 김치를 소재로 한 수필집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재일교포 2세인 이연순 씨가 지은 <김치 이야기>라는 수필집인데, 이연순 씨는 일본에서 50년 넘게 김치 사업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2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결혼 직후 김치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비롯하여 김치와 일본, 김치와 재일교포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연순 씨가 김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갓 끝난 당시만 해도 김치는 조센즈케(朝鮮漬, 조선 장아찌)라고 불렸고, 한국인 말고는 김치를 입에 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의 일본인들은 마늘 냄새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하는군요. 하물며 마늘에 젓갈까지 들어간 음식을 선호할 리 없었습니다. ‘조선’의 음식이라는 점도 편견에 한 몫을 했겠지만 말이지요.

이연순 씨는 500엔으로 김치 도매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500엔으로 담글 수 있는 김치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마늘과 매운 맛을 빼고 담근 김치였습니다. 더군다나 이연순 씨는 고정된 판매 루트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담근 김치를 들고는 무작정 찾아가 세일즈하는 방식으로 장사하게 됩니다.

물론 이유도 말하지 않고 무조건 필요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가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요. 그래도 서서히 단골집은 늘어갔습니다. 교토의 유명한 장아찌 가게와 계약을 맺어 납품하게 되는 등 점차 김치 판매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20년 만에 도매에서 소매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고, 이름도 ‘조선 장아찌’에서 ‘김치’로 바꾸어 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김치 부띠끄’를 열어 아름답고 깔끔한 매장에서 “김치에게 예쁜 옷을 입혀 시집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연순 씨는 “아무리 가난했던 시절에도 김치 없는 식탁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민족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음식, 그것은 김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비록 2살 때부터 일본에서 살게 되었어도 자신의 뿌리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늘 잊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신의 뿌리이자 삶의 원동력은 바로 김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1934년생이신 이연순 씨의 80여 년의 삶 중 김치는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합니다. 이렇게, 김치는 이연순 씨에게 마치 ‘오래 입은 친숙한 옷’과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에서 김치가 한국인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혐오식품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는 재일교포 1세들이 겪은 고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김치는 재일교포들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대명사가 바로 김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치는 이제 일본 사회에서 인기 있는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연순 씨는 이렇듯 김치가 걸어 온 길은 재일교포의 역사와 닮아 있다고 말합니다. “무엇 하나 의지할 것 없는 이국 땅에서 차별과 싸우며, 죽을 힘을 다해서 일하여 조금씩 기반을 쌓고, 가까스로 안정을 얻게 된 재일 코리언의 삶과 발걸음을 함께 한 것이 김치입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주요 소재는 김치지만, 재일교포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비록 같은 영토 안에서 서로 얼굴 마주하며 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은 바로 문화이며 그 중에서도 음식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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