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공장 이야기

/김치 블로그/김치 데스크   -  2007. 9. 13. 16:40

추운 겨울.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부산을 떤다. 저마다 손엔 고무장갑을 끼고 둥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전날 이미 어머니가 절여둔 배추가 커다란 대야에 가득 쌓여 있다. 한 편에서 빨간 속을 버무리고, 한 편에선 배추에 속을 넣는다. 절인 배추 한 잎을 뜯어 속을 넣고 둥글게 말아 입 속에 넣고 오물거리면서 절인 배추는 하나 하나 빨갛게 변해 간다. 그렇게 담근 김치를 김치 통에 넣고 있노라면 아버지는 질 좋은 돼지 목살을 삶아 내온다. 막 담은 김치와 잘 삶은 돼지 목살은 그야 말로 환상의 궁합. 겨울 김장 날은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같이 일하면서 즐기는 잔칫날이다. 그리고 한 동안, 김치 하나면 더 이상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족의 식탁은 풍성해진다.

충남 청양에 있는 한울 김치공장을 찾아 가는 내내, 내 머리 속엔 우리 집 김장하는 날의 기억이 맴돌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 몇 년, 가족이 모여 김장 담그는 날에 얼굴 한 번 비치지 못한 미안한 감정이 슬며시 묻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얘기하는 엄마의 목소리, 고기는 언제 삶을까 서둘러 물어보는 아버지의 목소리, 다 버무린 배추를 옮겨 달라고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 속을 배추에 싸 먹고 맛있다고 떠드는 딸 아이의 목소리… 분명 쉽지 않은 일이라 모두들 힘들 텐데, 오히려 즐거워하던 그 목소리들. 그래, 김장하는 날은 틀림 없는 잔칫날이었다.

김치를 담는 과정을 생각을 하니 머리 속에 고정된 이미지들이 흘러간다. 노란 배추, 빨간 김치 속, 고무 장갑, 김치 속이 가득한 커다란 대야, 김치를 차곡 차곡 쌓아놓은 김치통… 그러나 한울 김치공장에 도착하면서 나만의 달콤한 상상은 그걸로 끝을 내야 했다.

청양 고추와 구기자로 유명한 충남 청양. 서해안 고속도로 광천IC를 빠져 나와 청양 방면으로 차를 몰아 오다 보면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유명한 칠갑산 밑 자락에 다다른다. 노래만 몇 번 불러봤지 실제 칠갑산을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저 신기할 따름. 칠갑산 밑 자락에 넉넉하니 터를 잡은 비봉산업단지 안에 꼬마김치 한울 공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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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울 김치 공장 전경. 사무실 뒤 쪽으로 공장 시설이 있다.

김치를 담는 과정이란 게 그다지 복잡할 것 없다는 단순한 생각에 공장에 대해 별 기대를 안 한 건 순전히 내 실수다. 한울 김치 공장은 커다란 대야와 빨간 고무장갑으로 연상되는 김치 담그는 이미지를 한 번에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김치 공장에 들어가려면 반도체 회사에서 볼 수 있는 방진복을 입어야 한다. 방문객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흰 가운과 모자, 얼굴 절반을 덮는 마스크, 그리고 고무 장화를 신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공장에 들어가기 전엔 누구라도 손을 씻고, 먼지를 털고,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내뿜는 공기를 이용해 에어샤워를 해야 한다.

김치를 담그는 첫 번째 작업은 배추를 고르는 일이다. 산지에서 바로 우송된 배추를 고르고 다듬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작업대 위에 배추가 올라 오면 배추의 겉껍질을 벗기고 문제가 있는 배추는 골라 내는 정선 과정이 시작된다.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배추를 다듬는 손들이 바쁘고 설령 나쁜 배추를 하나라도 놓칠까 바라보는 눈매들이 날카롭다.



정선 과정을 잘 통과한 배추들은 자동 절단기로 깨끗하게 반으로 잘리고 일 단계 세척 과정을 거쳐 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절임 과정을 넘어 간다. 순수 국산 소금만을 사용해 배추를 절이고 절인 배추는 다시 5단계 자동 세척 과정을 거친다. 물에 흔들어 씻는 과정은 물론 버블 세척, 샤워 세척 등을 거치면서 더 깨끗한 배추로 태어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물의 온도. 수돗물은 계절 별로 물의 온도가 달라 배추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 한울 김치 공장에서 사용하는 물은 지하 150미터에서 솟아난 천연암반수로 일년 내내 물의 온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세척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배추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한다고.



여기까지 끝나면 한울 고유의 저온절임 기술로 배추를 12시간 정도 숨을 죽인다. 김장 담그기 전날 어머니들이 배추를 절여 놓고 하루 정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이유다. 배추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낮은 온도에서 절이면 김치가 훨씬 아삭해지고 배추가 더 잘 절여지도록 무거운 누름판으로 꼭꼭 눌러 충분히 재운다.



드디어 절인 배추에 속을 버무리는 일이 시작된다. 고춧가루, 마늘, 대파, 생강, 무,.. 들어가는 재료는 죄다 국산이다. 중국산 김치 파동에 이어 최근에 중국산 만두에는 종이를 넣는다는 뉴스가 나와 가뜩이나 중국산 식품의 안전성이 걱정되는 상황에 모든 재료를 국산을 쓴다 하니 안심할 뿐이다. 그러나 모든 재료를 국산을 쓰면, 값이 올라갈 수 밖에 없으니…. 국산 김치가 중국산 김치에 비해 소비자 가격이 4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은 국산 재료가 중국산 재료에 비해 월등히 비싼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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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재료로 잘 버무린 속은 보기만 해도 매콤하다. 이렇게 빨간 속을 배추에 버무리는 과정은 김치 담는 중에 사람이 가장 많이 필요한 일이다. 얼핏 봐도 삼십 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절인 배추에 속을 버무린다. 잘 버무린 배추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포장 과정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자주 먹는 소포장 김치인 꼬마김치는 생산 과정이 조금 다르다. 포기 김치가 배추를 잘라 절이고, 버무린 후 포기 채로 포장하는 것과 달리 소포장 김치인 꼬마김치 맛김치는 잘게 자르는 과정이 하나 더 필요한 것이다. 일단 절인 배추에서 먹지 못하는 꼭지 부분을 칼로 잘라낸다. 꼭지가 잘린 배추는 커다란 절단기를 지나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리고, 이렇게 잘린 배추들은 다시 바닥이 환한 형광판독기 위를 지나면서 불순물이 있는지 육안으로 찾아낸다.


먹기 좋게 잘린 배추는 속과 함께 버무려 자동화 기계에서 자동 포장된다. 포장 과정까지 마친 김치는 1도에서 5도 사이의 저온 창고에서 보관되고 냉장 트럭을 타고 유통점으로 배포된다.

보통 김치는 익어야 맛이라 한다. 그런데 제조 과정에서는 특별히 김치를 더 익히지 않는다. 고객의 입맛이 다양해 생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분히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포장 김치를 사서 바로 먹지 말고 냉장고에서 1-2주일 정도 익혀 먹는 것이 좋다.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는 까닭에 공장 김치는 막연히 지저분한 공정에서 생산될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김치 담는 일을 너무 만만히 본 까닭에 그냥 커다란 대야 몇 개와 고무 장갑이 김치 공장 시설 전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도 그랬으니까. 김치 공장을 나서면서 역시 김치는 과학이라는 생각을 했다. 과학적인 공정에서 과학적인 데이터로 씻고, 절이고, 양념을 하고 숙성시킨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포장 김치들이 이 정도 맛을 유지하고 세계 시장에서 한국 김치의 위상을 높이는 것일 게다.

그러나 단순히 김치를 과학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집집마다, 지방마다 김치 맛이 다르고, 또 그 다른 맛에 저마다 매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김치는 과학이라는 말로 정의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김치는, 과학이 아니라 문화다.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을 만들어 가는 유산이자 문화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어차피 김치를 사 먹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자동화된 공장 시스템과 과학적인 데이터는 이제 마련되었으니 여기에 문화적인 감성 요소만 결합한다면 우리 김치가 와인과 같은 문화 상품이 될 것임은 틀림 없는 일이다. / 닥터김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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